[문화칼럼] 흙과 불의 철학자, 이학천 명장을 만나다.
-경북 문경 묵심도요에서 꽃피운 200년 도자기의 혼
문경 마성면, 초록의 산자락을 끼고 돌아가면 ‘묵심도요’가 있다. 200년을 이어온 도자 명가, 그 7대 전승자인 이학천 명장(61년생)은 오늘도 흙을 만지며 시간을 굽는다. 그는 구수한 말솜씨 만큼이나 정직하고도 깊은 도자기의 길을 걷고 있었다.
9살에 아버지이자 6대 도공이신 이정우 선생에게 도예를 배운 그는 “도공의 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휘어진 손가락을 내보이며 “다시 태어나도 도예가의 길을 걷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엔 주저함이 없다. 백자, 분청, 청자, 진사도자기, 다완 등 거의 모든 전통 도자기를 망라해온 그의 작업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창조였다.
이 명장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 조선 분청의 박지, 음각, 양각, 투각 기법을 융합한 ‘다중분장기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 발명 특허(제0342996호)까지 받았다. 물감 없이도 그림처럼 표현할 수 있는 이 기술은 도자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그가 이 기법으로 만든 대표작 고향의 동심은 흙과 불이 빚은 시골 유년의 따뜻한 풍경을 담아낸다.
그의 이름 앞에는 ‘대한민국 도자기공예 명장(2002~16호)’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2-가호(분청, 백자 사기장)’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은메달, 중소기업청 신지식인 선정, 국내외 전시와 경진대회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특히 그는 14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종합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학천 명장을 돋보이게 하는 건 화려한 타이틀보다도 도자기에 대한 진심이다. “도예는 노동 없이는 불가능한 예술입니다. 기술이 예술의 시작입니다.” 그의 도예철학은 단단했다. 그래서 그는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애정을 쏟는다. 조카들과 다섯 명의 제자에게도 먼저 ‘기술’을 가르친다. 진정한 예술은 기술 위에 세워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의 작업실 묵심도요는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다. 공원처럼 조성된 마당엔 잉어가 헤엄치는 연못과 손님을 맞이할 정자, 천천히 사유할 수 있는 냇가가 있다. 그의 도예는 자연의 리듬과 다르지 않다. 흙을 반죽하고, 물레를 돌리고, 유약을 입히고, 불을 지피는 모든 과정이 그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그가 마지막으로 지향하는 이상은 단순한 아름다움, 바로 달항아리다. 색도 무늬도 없이 흙의 정직함을 오롯이 담은 조선의 유백 달항아리. 한 점은 경매에서 31억 원에 낙찰될 만큼 예술적 가치가 높지만, 그가 말하는 달항아리의 미는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이다. “그게 예술의 정수 아닙니까?”라고 되묻는 그의 표정이 닮아 있었다.
다가오는 10월,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그는 100여 점의 작품을 준비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필자와 마주 앉아 마신 보이차 한 잔, 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직감했다. "다음에 소주 한잔 하세"라며 등을 두드리는 그와 나는 동갑내기였다.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학천 명장. 그는 흙을 굽는 장인이기 전에, 삶을 빚는 철학자였다.
<차영복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