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구국의 영웅 ‘난계 김득배’ 조명… 문경서 학술대회 열려
고려 말기 홍건적 침입을 막아낸 구국의 충신이자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는 난계(蘭溪) 김득배(金得培, 1312~1362) 선생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문경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회장 박승대)와 문경문화원(원장직무대행 권용문)이 공동 주관하고, 상산김씨대종회(회장 김삼균)가 후원했다. 행사에는 지역주민과 학계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해 3시간 넘게 발표와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학술대회에서는 김득배 선생의 출생지, 관직, 업적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도학 명예교수, 고려대학교 김창현 전 연구교수, 공주대학교 윤용혁 명예교수, 난계김득배장군기념사업회 이창근 회장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상주 출생, 문경 관할 지역… 출생지 혼용 이유 밝혀져
김득배 선생은 1312년 고려 충선왕 4년에 상주에서 출생했으며, 이는 당시 문경 흥덕동 일원이 상주목 관할이었던 행정구역 체계에서 비롯된 사실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상주와 문경 양쪽 모두에서 출생지로 혼용돼 온 배경이 설명됐다.
김득배는 1330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검열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공민왕의 즉위와 함께 요직을 맡았으며,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는 데 공을 세워 1359년 공신에 책록됐다.
홍건적 격퇴, 개경 탈환의 중심에 선 영웅
1359년과 1361년, 김득배는 반복된 홍건적의 침입에 맞서 서북면도지휘사, 도병마사 등으로 활약하며 서경 탈환과 국경 수비에 큰 공을 세웠다.
1362년 1월,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하자 김득배는 정세운, 안우, 최영, 이성계 등과 함께 20만 대군을 이끌고 개경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암투에 휘말려 김용의 조작된 조서에 따라 정세운을 살해하는 데 가담했고, 이 일로 처형당한 안우, 이방실과 함께 김득배도 상주에서 체포되어 51세 나이에 효수형을 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당시 그의 제자였던 정몽주가 왕에게 시신 수습을 청해 장례를 치르고, 제문을 올렸다는 기록도 함께 전해진다.
“문무겸전 인물, 정당한 역사 평가와 현창 시급”
발표자들은 김득배 선생을 단순한 문신이나 무신이 아닌 ‘문무겸전(文武兼全)’의 대표 인물로 평가하며, 최종 관직은 종2품 정당문학이 아닌 정2품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도학 명예교수는 “선생의 생애와 업적, 유적이 실재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며, “없는 것을 만들어 현창하는 시대에, 있는 인물과 사실을 정리하고 알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주·문경 협력 통한 현창사업 기대
현재 김득배 선생의 유적은 상주시 낙양동의 유허비, 상주박물관에 전시된 선생의 동생 김선치의 벼루, 연천 숭의전에 봉안된 위패, 여주 신륵사 석종 사리탑, 문경 대승사 윤필암 등 전국에 흩어져 있다.
이에 따라 상주와 문경 양 시가 힘을 모아 선생의 유산과 업적을 기반으로 한 통합적 현창사업 추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