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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11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11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이 채

말을 하기보다 말을 쓰고 싶습니다.
생각의 연필을 깎으며 마음의 노트를 펼치고,
웃음보다 눈물이 많은 고백일지라도
가늘게 흔들리는 촛불 하나 켜 놓고,
등 뒤에 선 그림자에게 진실하고 싶습니다.

피었을 땐 몰랐던 향긋한 꽃내음이
계절이 가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고,
여름 숲 지저귀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어디론가 떠나고 흔적 없을 때,
11월은 사람을 한없이 쓸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람결에 춤추던 무성한 나뭇잎은 떠나도
홀로 깊은 사색에 잠긴 듯,
낙엽의 무덤가에 비석처럼 서 있는
저 빈 나무를 누가 남루하다고 말하겠는지요.
다 떠나보낸 갈색 표정이 누구를 원망이나 할 줄 알까요.

발이 저리도록 걷고 걸어도 제자리였을 때
신발끈을 고쳐 신으며 나는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그 길에서 하늘을 보고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나는 또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하늘을, 세상을, 아니면 당신을

비록 흡족지 못한 수확일지라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말 것을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말 것을,
한줄 한줄 강물 같은 이야기를 쓰며
11월엔 한그루 무소유의 가벼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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