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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단풍 너를 보니

<단풍 너를 보니>
              / 법정스님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를 줄 알았는데

가을바람 소슬하니 하는 수 없이

너도옷을 갈아 입는구나

붉은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일줄 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

세월따라 가다보니 육신은 야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가슴은 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

몸과 마음이 따로노니
주책이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이왕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었으니

온 산을 무대삼아 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

신나게 추다보면 흰 바위 푸른솔도

손뼉 치며 끼어 들겠지

기왕에 벌린 춤 미련 없이 너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붉게 활활 불 태워라

삭풍이 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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