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동방사 (2) 썸네일형 리스트형 [문화칼럼] 상주의 천수관음상..이제는 고국으로 돌아올 때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 130년 동안 고국을 떠나 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경북 상주시 동방사의 ‘천수관음상’을 되새겨 본다.1866년, 고종 3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했다. 이를 병인양요라 한다. 그러나 이 군사적 충돌의 이면에는 조선을 무력으로 열어젖히려는 제국주의적 의도가 숨어 있었다. 비록 프랑스는 이 전투에서 물러났지만, 20년 뒤인 1886년에는 결국 조불수호통상조약을 통해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성사시킨다. 이로써 프랑스는 자국의 학자와 탐사단을 조선에 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샤를르 바라(Charles Varat)의 문화탐사였다.1888년, 프랑스 민속학자 바라가 이끄는 탐사단은 조선에 도착해 전국을 여.. 상주 '동방사'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에서 나왔다. 1314년(고려 충숙왕 1)에 정한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두대간의 줄기인 속리산이 북으로 솟아있고, 남에는 낙동강 줄기가 휘돌고 있다. 산과 물, 들이 고루 펼쳐지니 자연, 인심이 넉넉하다. 옛 선인들은 넉넉한 상주에도 근심이 있었다.근심의 첫째는 지네 때문이다.상주여자고등학교 서쪽에는 율수(栗藪)라는 제방이 있다. 이곳에 조공재(趙公堤)라는 비명(碑銘)이 있는데 내용인 즉, 선인들은 노음산에서 시작하여 북천에 이르는 형상이 지네를 닮아 이를 오공입지형(蜈蚣立地形)이라 하였다. 지네 때문에 소년의 죽음이 많다고 여긴 선인들은 액을 막기 위해 지네가 싫어하는 밤나무를 심었다. 1873년(고종 10년)에 세워진 조공제 비문에 따르면, 1871년 상주목사로 부임한..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