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읍성 (2) 썸네일형 리스트형 상주읍성 북문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다. 상주시는 그동안 도로 속에 묻혀있던 상주읍성 북문터(北門址)가 그 모습을 드러내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다.상주시와 (재)금오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달 30일 서성동 81-2번지 일원에서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아 실시한 ‘상주읍성 북문복원사업 대상부지(북문터)’ 발굴조사에 대하여 발굴조사 자문위원회를 가졌다.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상주시는 북문터의 현황과 구조를 파악하고 북문 복원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에서 상주읍성 체성부, 해자(垓子), 북문터와 문루(門樓) 등성시설(성안에서 성벽 위나 성문의 문루 등에 올라가게 만든 시설) 등이 확인됐다. 특히 처음으로 상주읍성 북문터의 기저부 시설이 확인됐는데, 약 300㎝의 너비를 가지는 문구부를 조성하기 위해 서쪽에 방형의.. <상주. 영령들이시여> 백성이 하나 되어 '상주 북천 전투' 동학농민군은 상주읍성을 점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상주에서는 대변란기에 수많은 이름 모를 영령들이 죽어갔다. 얼마나 많은 죽임을 당하였는지 알 수 조차 없다. 그리고 우리는 선조들에 대한 혼령을 잘 위로하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 사건이 임진왜란과 동학혁명이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 소식을 듣고 순변사 이일 이 이끄는 중앙군은 4월 23일 상주에 도착하게 된다. 중앙군은 불과 60여 명뿐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상주에서 800여 명의 민초들이 창의해 의병으로 나선다. 하지만 조총으로 무장한 1만 7천여 명의 왜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순변사 이일은 도주하고, 상주 판관 권길, 사근도 찰방 김종무, 의병장..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