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와 팬티 논쟁!>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치마와 팬티 논쟁.
논쟁이 아니라, 문정희 시인의 '치마'라는 시와 임보 시인의 '팬티'라는 응답시로 주고 받아 시단에 회자된 바 있다
남자와 여자는 본능적인 것이 성욕이다. 치마 속에 무엇이 있는지, 팬티 속에 무엇이 있는지
남자라고 생겨먹은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 같이
치마 속에서 무너지고, 그 속엔 신비한 무언가가 있다.
아서라 치마 속 그 무언가는 금지구역이고, 저 탱탱한 팬티도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두 시인에 정성수 시인의 '옳거니'로 심판이 나타났다
방패 없는 창이 어디 있고, 창 없는 방패가 무슨 소용이랴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티>
/ 임보
문정희의 [치마]를 읽고서....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하던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옳거니>
/ 정성수
문정희 시인의 [치마]와 임보 시인의 [팬티]를 읽고....
치마를 올릴 것인지? 바지를 내릴 것인지?
이것이 문제로다
그렇다
세상의 빨랫줄에서 바람에게 부대끼며
말라가는 것 또한
삼각 아니면 사각이다
삼각 속에는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이 있고
사각 속에는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가 있다고
문정희와 임보가 음풍농월을 주거니 받거니
진검승부를 펼친다
옳거니
방패 없는 창이 어디 있고
창 없는 방패가 무슨 소용이리
치마와 바지가 만나 밤은 뜨겁고 세상은 환한 것을.
(문정희와 임보 시에서 차용)
[해설]
남자가 호기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치마 주위를 맴도는 광경은 낯설지 않다.
치마 속을 봤다고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고, 실체를 안다고 떠나가지 않는다. 남자는 관광객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나이에 관계없이 남자라고 생겨먹은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 같이 치마 속에서 무너진다.
그 속엔 신비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회오리든, 신전이든, 바다든, 남자는 부나비처럼 머리를 들이댄다.
일단 들어가면 죽어버리는 동굴이라 하더라도 하등 신경 쓰지 않는다.
부나비가 어찌 불을 두려워하랴.
치마 속엔 정신 줄이 나가는 환상이 존재한다.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지만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쫓아가는 모습은 ROM에 새겨진 프로그램과 진 배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무모한 저돌성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지속되고 있는 터다.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치마를 벗었다고 그 마법이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신비의 동굴을 탐험하는 일에 더욱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진정 경이롭다.
이 시에 대해 임보 시인이 시 ‘팬티’로 답했다. 재미있는 알레고리가 웃음을 자아낸다.
젠더 갈등으로 청춘남녀 간에 얼굴을 붉히는 작금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하던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임보의 시 ‘팬티’ ) 오철환(문인) 대구일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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