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사민정책과 고녕가야 후손들
- ‘사도마을’ 알려진 괴시마을에 이색의 생거지 비가 있으며, 바다 보며 시 읊던 자리 보존
경상북도 영덕군에는 9개 읍면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영해면으로 역사 이래 조선말까지 경북 동해지역의 중심고을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강릉까지 이어지는 동해안에서 가장 이상적인 터전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신라 박재상이 우리 고대사서인 부도지를 지은 곳이 영해땅 칠보산 언저리였다.
원래 영해고을은 영해면 병곡면 창수면과 영양군 일부를 점하고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소(小)안동이라 불릴 만큼 영남 동해안의 대표적 반향이었다. 근대까지 8대 성씨 종가가 대를 이어가면서 세거한 역사도시이며 신돌석 장군을 비롯해 고려 성인인 나옹대사의 생가지이기도 하다.
동해안에서는 드물게 수백 만 평의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의 명동산과 칠보산이 버티고 있으며 영양과 창수를 가르는 창수재에서 흘러내리는 창수천이 대진항으로 해서 동해에 합류하는 곳이다.
이곳이 신라가 함창고녕가야를 멸망시키고 호족80여 가를 강제 이주시킨 사민정책(徙民政策)지이다. <삼국사기> 본기 첨례왕조에 사벌국을 멸망시켰으며 위례왕조에 사도성을 개축하고 사벌주호민을 이주시켰다고 했다. 그때 강제 이주된 호민 세력들이 고로왕 후손인 함녕(창)김씨들이며 그 후 고려 중후기에 세상에 다시 두각을 나타냈으며 지금까지 그 후손들이 영덕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함녕김씨들은 태조왕 김고로를 시조로 한다. 사도성으로 추방된 일파(一派)에서 고려(高麗) 인종(仁宗)때 출생(出生)하여 현달(顯達)한 덕원군(德原君) 김종제(金宗悌)와 덕양군(德陽君) 김종계(金宗繼) 형제(兄弟)를 중조(中祖)로 하여 새로이 문호(門戶)를 열었다. 사벌국 호민 후예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이 간재 김택으로 고려말 거유(巨儒)로서 사후 대찬성 벼슬을 추증받았으며 그의 아들은 공민왕을 호종한 김요이다. 김요는 김택의 아들이자 이곡의 처남이며 이색(李穡)의 외삼촌이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재침입하여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신할 때 호종한 공으로 찬성사에 제수되었고 함녕군에 책봉되었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함창으로 낙향한 뒤 서강촌(西江村,현 상주시 공검면 예주리)에 청향정(淸香亭)을 짓고 시와 술로 소일하였다. 김택의 첫째 사위는 이곡으로 외손자가 이색이며 또 다른 사위는 청송심씨 심용이며 심용의 아들은 이성계의 휘하장수인 심덕부이고 손자가 세종의 장인인 심온이다. 김택은 영해향교의 대현(大賢)으로 있을 때, 당시 유람 중이던 이곡을 만나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사위로 삼았다. 이곡의 호는 가정(稼亭)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찬성사 자성(自成)의 아들이고 색(穡)의 아버지이다.
<동문선>에 100여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도 그의 작품이다. 이색은 고려말의 문신이며 호는 목은(牧隱)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14세에 진사가 되었다. 1348년 21세에 원나라에 유학하여 국자감의 생원으로 성리학을 공부했다. 이후 춘추관 예문관 대제학 겸 성균관 대사성 등을 거쳐 판문하부사를 지냈다.
1389년 이성계 일파에 의해 관직에서 쫓겨나 유배되었다가 1392년 조선 개국 후 고향 한주로 돌아갔고, 1395년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졌으나 거부했다. 고려 말의 대 유학자로 권근(權近) 변계량(卞季良)등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모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1380년부터 신륵사에서 대장경을 간행했다.
심용은 김택의 또 다른 사위이며 이곡의 동서이고 김요와는 처남-매부 사이며 이성계의 휘하장수인 심덕부의 부친이며 세종의 장인인 심온의 할아버지다. 청송심씨 족보에 의하면 김씨 할머니가 시집올 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이 기반이 되어 청송심씨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심용과 이곡은 동서지간이자 절친으로써 아들 심덕부를 13세 때 이곡에게 보내어 목은과 함께 수학하게 했다.
친구이자 동서인 이곡에게 그의 아들 색과 같이 생각하고 훈육해 달라고 맡겼다. 심덕부는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수하장수였으며 나중에 조선개국의 1등 공신으로 책봉된다. 아들이 일곱 명으로 심인봉, 심의귀, 심도생, 심징, 심온, 심종, 심정이다. 이 중 심온(沈溫)은 세종의 국구(國舅, 임금의 장인)가 되었으며, 심종(沈淙)은 태조의 부마가 되었다.
1388년(우왕 14)에 서경도원수로서 조민수와 함께 좌군에 속하여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도왔다. 1397년(태조 6)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1399년(정종 1)에는 좌의정이 되었다. 김택의 손자이자 김요의 아들인 김원빈과는 외사촌 고종사촌이 되며 목은과는 이종사촌이 된다. 한 대를 내려가면 심온이 영의정이 되고 김요의 손자인 김남택과 김남중은 이조판서, 형조판서가 된다.
손재 김남택은 김택의 증손자로서 세종조의 학자로서 1370년에 전라도 장수현 계남면 침령에서 태어난다. 1402년 문과에 급제 한 후 이조정랑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만년에는 형조판서를 지낸 동생 김남중과 함께 낙향하여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황희정승이 지은 그의 조의문에 “군자는 하늘의 뜻을 받들고 어진 이는 일의 기회를 살핀다. 때로 비가 내리는 것 같이 만물이 스스로 벗이 된다”고 했다.
조선말 예조판서를 지낸 이정재는 선생의 묘갈명에 “그는 고녕가야국 왕의 후예로서 학문은 목은선생의 연원을 이었으며 덕망은 세상을 덮고 효행과 우애는 하늘이 낳았다. 옛날 가락국에 다섯 나라가 있었으니 그중 고녕가야국이 수도를 함창에 정했는데 이 왕실의 후예가 함녕(창)김씨가 되었으니 선생의 선조였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3세기 함창고녕가야가 신라에 멸망하고 강제 이주당한 뒤 태조 고로왕의 후손들은 여말 선초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말 함녕김씨 김택의 친인척이 학계와 정계의 핵심으로 등장하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것이다. 김택의 증손자인 김남택 김남중 형제의 출세와 외손자인 목은학파와 인맥학맥의 관계, 심온 심덕부와의 인맥, 혼맥으로 이들은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함창고녕가야 태조의 후손들은 오랜 세월 재야에 묻혔다가 고려말 조선초에 들어서면서 역사전면에 화려하게 재등장한 셈이다. 사도마을로 알려진 경북 영덕군 영해 괴시마을에는 이색의 생거지 비가 있으며 이색이 태어난 집과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읊었던 자리도 보존되어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원래의 주인이었던 함녕(창)김씨는 모두 떠나고 김택의 처족인 영양남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함녕(창)김씨는 8,391가구 총 26,31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함창 김씨는 28,343명으로 인구가 조사 되었다.
함창김씨 지파로는 영양파 함창파 옥천파 장수파 하동파 관동파 영천파 순흥도촌파 순흥파회파 감정공파 등이 있다. 집단 거주지로는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건진리,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인창리,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거주한다.
함녕김씨 문중은 함창고녕가야 멸망 후 호족세력은 전국으로 흩어지고 일부가 남아 왕도인 함창에 거주하며 태조왕릉을 지키고 있다. 왕릉 외 왕비릉을 포함하여 중시조 이래로 함창김씨의 가문을 연면히 이어왔다. 1592년 선조 25년에 릉 주변에 세거하며 릉을 수호하던 함창김씨 문중과 경상도 관찰사 김수, 상주현감 이극필 등이 릉의 보수를 위하여 릉을 열어본 결과 비문에 고녕가야 왕릉임을 확인하고 함창김씨가 옛 왕족임을 증명하게 되었다.
서기 1712년 숙종 38년에 왕명에 의하여 묘비와 석물을 건립하게 되고 수차례 보수를 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왕릉은 1971년 경상북도 지방문화유산 제26호로 지정되고, 왕릉에는 매년 음력 3월 3일에 전국 각처의 자손들이 모여서 대제를 봉양한다. 이토록 2,000년의 세월을 연연히 이어온 함창김씨문중의 건재는 한 문중의 차원을 벗어나 우리나라 고대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주변의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거짓으로 꾸며대는 판국인데 멀쩡하게 살아있는 함창고녕가야 역사를 사장시키고서 지역발전이나 국가발전을 논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함창고녕가야역사를 제자리 매김하는 것은 민족의 당연지사이면서 중대사이다.
문경 봉천사 주지 지정스님
상주문경함창 고녕가야선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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