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녕가야 (7) 썸네일형 리스트형 가야라는 명칭 지우고, 신라나 진한으로 ‘왜곡’ 함창고녕가야를 말한다 오봉산 철제투구와 병풍산 금관상주 문경 예천 안동을 이어주는 낙동강 언저리에는 수만 기의 가야고분이 있으며 그 속에 묻혀있던 유물유적이 뛰쳐나와 방방곡곡을 유영하고 있다. 갈 길을 잃어버린 망자의 영혼처럼 2천년 만에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되었지만 그들은 뒷골목 어둠의 세계를 전전하고 있다.망자의 혼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망자와 함께 무덤 속에 들어갔던 유물들은 그냥 뒷골목 밀매의 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유적들은 낙동강의 옛 주민인 가야인들이 만들었으며 가야표라고 인장이라도 찍어놓았을 만큼 뚜렷한 흔적을 갖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가야라는 명칭을 지우고 신라나 진한이라는 중국 삼국지의 지명을 빌려 그들의 작품으로 왜곡하고 있다. 힘창고녕가야시대 유물로는 .. 철기문화 바탕인 사철(沙鐵) 생산되는 낙동강과 지류 함창고녕가야를 말한다 함창고녕가야 적시는 하천 낙동강명은 상주뿐 아니라김해에 이르기까지옛날 가야 가락이 번성했던지역의 ‘동쪽 강’이라는 의미함창지역은 낙동강 유역 가야 권역중에서 토지면적이 김해를 상회할 만큼 넓다. 금관가야의 본거지인 김해 일대는 지층의 융기와 간척사업으로 넓은 평야가 새로 생겼지만 함창고녕가야 일대는 천혜적으로 넓은 평야와 다양한 하천이 발달하였다. 강과 평야뿐 아니라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앞뒤로 지나가면서 산지도 타지역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어 전략상으로도 요새를 갖추고 있다.고대국가가 성립하려면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넒은평야와 물류를 운반할 수 있는 수로가 발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적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자연적 요새의 구비도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상주와 문경을 아우르는 함.. <기고> 함창고녕가야 역사 회복...양산 북정리 가야고분군 - 가야사를 비롯한 우리 고대사를 확실히 정립해 국가정체성 확립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양산박물관 뒤편 성황산에는 산책로 옆으로 오래된 고분이 줄지어 있다.이름모를 주인공들의 무덤이 1000여 개가 분표하며 제일 하단에는 김유신장군의 아버지 김서현장군과 어머니 만명부인의 무덤인 부부총이 높이 솟아있다.부부총 아래 옆 단면에는 장군의 여동생인 보희의 무덤으로 알려진 금조총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양산의 영축산에는 김유신장군의 할아버지 김무력장군의 무덤이 있으며 이들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직계 후손들이다.금관가야의 수도인 김해와 근접한 양산에 가야무덤이 집단으로 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가야왕손출신으로 신라에 복무한 김무력장군을 비롯한 김서현장군 등의 무덤이 양산에 있다.필자는 지난 봄 인하대.. 상주 함창 고녕가야왕릉 등 선정...5월 경북 여행 필수코스로 경북문화관광공사(사장 김남일)가 5월의 경북 여행 필수코스로 상주시의 전 고녕가야왕릉과 함창명주테마파크를 선정해 사진과 내력을 소개했다.이달의 명소는 상주지역의 고녕가야에 대한 역사문화를 이해하고, 상주의 특산품인 명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박물관, 산책로, 체험장 등의 다양한 문화체험과 먹거리까지 안내한다.전 고녕가야왕릉은 고령가야 태조의 왕릉으로 알려지고 있다. 1592년 경상도 관찰사 김수와 함창 현감 이국필이 묘비를 발견하면서 가야왕릉임을 확인해 지금까지 형태를 보존 관리하고 있다.이후 1712년 숙종의 명으로 비석과 조각상이 설치되었고, 1971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고녕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함창명주테마파크는 상주의 명주를 주.. 상주 함창, 고녕가야국 태조 고로대왕 대제 봉행 29일 상주시 함창김씨 대종회(회장 김준호)에서는, 고녕가야태조왕릉 고릉관에서 ‘고녕가야국 태조 고로대왕 대제’를 봉행했다.이번 대제에는 함창김씨 대종회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초헌관 (용진 해양경찰청장 삼로공파27세손) 아헌관 (주용덕 함창읍장) 종헌관 (상옥 평리공파 27세손)이 맡아 대제(大祭)를 봉행했다. 대종회 행사는 대종회장 인사, 대동보 발간위원장 말씀, 종헌 개정위원회 구성 등으로 진행 되었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돼 있는 ‘고녕가야태조왕릉’(상주 함창 증촌리7번지)에서는, 매년 음력 3월초에 함창김씨 후손들이 모여 시조왕릉 참배를 하며 고녕가야 조상의 얼을 기리는 뜻깊은 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함창 고녕가야를 말한다.[3] 고녕가야를 역사로 인정하고 보존해야 30여 년 전, 나는 함창 버스터미널 벽보에 게시된 고녕가야 태조 고로왕릉 사진을 보고 현장에 가보았다.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증촌리 고녕가야 태조왕릉은 위풍도 당당하게 시내 중앙 언덕에 안치되어 있다. 왕릉 앞 설명 간판에는 조선 선조 때 무덤 앞에서 묘지석을 발견한 사실과 수리한 연혁을 적어놓았다. 그 후 숙종 때 왕명으로 상석을 비롯하여 주위를 정비했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그로부터 30년 후 다시 고녕가야 태조왕릉 앞에 서자 고녕가야에 대한 깊은 의문이 생겼다. 주변의 역사 선생들께 문의해 보았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 《삼국사기》에는 무려 다섯 줄에 이르는 문장으로 함창 2천여 년간의 지명 변화와 함창이 고녕가야의 도읍이며 휘하에 문경을 비롯한 가은현, 호계현을 거느린 낙동강 상류 내륙.. 상주함창 고녕가야 복원...지역 정체성을 찾아서 지난해 말 진주시의회 서정인 의원이 제252회 정례회에서 ‘진주의 원류는 고녕가야가 아니라 소가야 계통이며, 고녕가야는 상주 함창이다’라고 주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이제 고녕가야 역사는, 역사의 정의와 지역 정체성을 찾는 진주시 의원들에 의해 1700년을 거슬러 다시 상주함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상주시에서는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이 무엇인가?서정인 의원에 의하면 1959년 진단학회 학자 이병도가 쓴 책에서, ‘상주 함창은 다른 5가야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고녕가야를 진주로 비정하고 싶다.’라고 한데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진주시의회는 서정인 의원을 비롯한 다수 의원들이 ‘가야사연구회’를 결성하고 고고학 학자들을 찾아 다니며 현장을 답사한 결과 ‘최종보고서’를 내게 되었다며, 2024년 진주시사 편찬시에..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