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함창고녕가야 (3) 썸네일형 리스트형 멸망 고녕가야, 영해고을로 호족들 강제 이주 - 신라의 사민정책과 고녕가야 후손들- ‘사도마을’ 알려진 괴시마을에 이색의 생거지 비가 있으며, 바다 보며 시 읊던 자리 보존경상북도 영덕군에는 9개 읍면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영해면으로 역사 이래 조선말까지 경북 동해지역의 중심고을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강릉까지 이어지는 동해안에서 가장 이상적인 터전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신라 박재상이 우리 고대사서인 부도지를 지은 곳이 영해땅 칠보산 언저리였다.원래 영해고을은 영해면 병곡면 창수면과 영양군 일부를 점하고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소(小)안동이라 불릴 만큼 영남 동해안의 대표적 반향이었다. 근대까지 8대 성씨 종가가 대를 이어가면서 세거한 역사도시이며 신돌석 장군을 비롯해 고려 성인인 나옹대사의 생가지이기도 하다.동해안에서는 드물게 수백 만 평의.. 함창 고녕가야를 말한다.[3] 고녕가야를 역사로 인정하고 보존해야 30여 년 전, 나는 함창 버스터미널 벽보에 게시된 고녕가야 태조 고로왕릉 사진을 보고 현장에 가보았다.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증촌리 고녕가야 태조왕릉은 위풍도 당당하게 시내 중앙 언덕에 안치되어 있다. 왕릉 앞 설명 간판에는 조선 선조 때 무덤 앞에서 묘지석을 발견한 사실과 수리한 연혁을 적어놓았다. 그 후 숙종 때 왕명으로 상석을 비롯하여 주위를 정비했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그로부터 30년 후 다시 고녕가야 태조왕릉 앞에 서자 고녕가야에 대한 깊은 의문이 생겼다. 주변의 역사 선생들께 문의해 보았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 《삼국사기》에는 무려 다섯 줄에 이르는 문장으로 함창 2천여 년간의 지명 변화와 함창이 고녕가야의 도읍이며 휘하에 문경을 비롯한 가은현, 호계현을 거느린 낙동강 상류 내륙.. 상주 함창‘고녕가야 역사회복’ 학술발표회...성황리 마쳐 11월30일 함창읍사무소 강당에서 열린 ‘제7회 함창고녕가야 역사회복을 위한 학술 발표회’가 200여명이 참석하여 많은 관심을 보인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상주문경 함창고녕가야선양회(대표 지정스님)에서 주최한 이날 행사는 이용중(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대표)와 김한복(함창김씨대종회 직장공파)대표의 인사말로 시작됐다.이어서 박찬화 대한사랑 학술위원, 지정스님(고녕가야 선양회대표), 정의선 상주왕실도자기보존회 대표, 김상호 상주역사공간연구소대표, 능현스님 (역사정립 승가회대표)이 발표를 했다.발표 주제는 한민족 시공간 축소지향의 식민사학, 오봉산 남산고성축성과 함녕김씨계보, 상주 왕실도요지와 모동백화산, 토기로 살펴본 고녕가야와 배달문화, 상주와 고녕가야영역의 바위구멍유적 소개와 분석 이다.이번 학술 발표회를..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