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서 선거란, '무능한 다수가 부패한 소수를 당선 시키는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투표를 하고나면 그 결과는 항상 부정하고 부패를 일삼는 정치인들이 당선된다는 의미이다.
국민이 판단력과 분석력이 부족하여 무능하기 때문에 선거때만 되면 정치인들의 감언이설에 속는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부패한 정치인들을 없애고자 한다면 투표권을 잘 행사해야 한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추구권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바꾸거나 사회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혁명이 필요하다.
혁명이란? 과거에는 국가권력에 맞서 체제를 전복하는 군사혁명이나, 왕통을 다른 왕통으로 바꾸는 역성혁명, 부패한 정권과 맞서 싸우는 민주혁명인 4.19혁명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혁명은, 4차 산업혁명 기술혁명 등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사는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급격하게 바꾼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상주시의 모습은 몇몇 위정자들의, 패거리정치 돈선거 부패와 부정 등 부끄러운 모습만 보여온게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볼때 상주는 혁명적 사고의 전환과 변화가 있지 않는한 침체국면에서 벗어 나기란 힘들것이다.
자기 고집대로 살려고 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고, 내 배가 부르니 모든게 배짱이며 남의 욕이나 하고 다니는 그야말로 꼰대의식을 깨 버려야 한다.
지역사회의 모습이 이러하니 우수한 인재들은 선거에 출마를 꺼리고 있다. 낯 두꺼운 사람들만 여기 저기서 나오고 당선 되고 나면 또한 전철을 밟는 악순환이다. 지역풍토가 그렇다.
이러한 현실에 시민들이 뿔이 날뻔도 하다.
이제는 상주에도 이러한 폐습을 단박에 깨뜨릴 혁명이 필요하다.
혁명의 주체는 깨어있는 시민들이다.
1894년 9월 18일 전국최초로 상주농민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읍성을 점거한 동학 혁명 정신이 아직까지 우리 가슴속 깊히 자리잡고 있는 상주다.
당시의 단합된 결기와 혁명 정신은 다 어디 가고 없는가?
위기의 상주를 구할수 있는 길은 선거혁명을 통하여 지도자를 바꾸고, 각 사회집단들 속에 뿌리깊은 개인주의 시민의식을, 개혁적 변화를 통하여 단박에 바꾸는 혁명이 필요하다.
상주에서 126년 전에 그랬듯이 혁명정신이 요원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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